(성 명: 김민지)
졸업 유예로 한 학기를 더 다니고 졸업할 예정이지만, 휴학 없이 4학년까지 마치며 다른 동기들이 이제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는 것을 보니 내 대학 생활도 마무리되는 느낌이다. 이에 맞추어 이번 학기 내가 세운 목표 중 하나는 바로 4년간의 대학 생활을 정리해보는 것이다. 평소에도 정리하기 좋아하는 나만의 방식으로 일종의 closure를 갖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아직은 각 연도마다 무엇을 했는지 간단히 적었을 뿐인데, 목록을 돌이켜보니 매년 조금이라도 봉사를 해왔던 것을 깨닫게 되었다. 따라서 이번 기회를 통해 대학 생활 중 체험한 봉사 경험을 되돌아보고, 나에게 봉사가 주는 의미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Ⅰ. 2018년: 외국인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 알리기
새내기 때 패기로운 마음으로 특별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고, 한국으로 단기 연수를 오는 외국인을 위한 버디를 언어교육원에서 모집한다는 글을 보아 지원했다. 한 달 동안이었지만 학생 식당, 지하철 이용 등 생활에 도움을 주었으며, 경복궁과 인사동을 함께 방문하여 한국문화를 경험한다던가, 학생들이 듣는 수업에 참여하여 토론회를 가졌던 기억도 난다. 비가 오는 날 바지와 신발이 다 젖어가며 경복궁을 함께 구경하고, 카카오톡 이모티콘 라이언이 왜 라이언인지 얘기해주는 등 함께했던 기억은 잊지 못할 것이다.
3년이 넘게 지났지만, 특별히 마음에 남는 경험을 꼽아보자면 집에 가던 지하철역에서 배달의민족 광고 포스터 문구를 설명해주었던 일이다. 배달의민족은 언어유희를 사용한 광고 포스터를 많이 붙여놓는데, 한 학생이 이것을 보고 어떤 의미인지 나에게 물었다. 하지만 이를 이해하려면 본래의 한국 속담과 왜 이것이 어떤 의미에서 언어유희가 되는지를 설명해야 해서 어려움을 느꼈고, 무엇보다 웃기려고 만든 광고이나 설명하니 재미가 없어졌다. 한국어 버디로 봉사를 하며 한국어, 영어 어떤 언어를 사용하든 대상자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 이를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느꼈고, 특히 외국인이기에 이것의 중요성을 더 극명하게 알 수 있었다.
Ⅱ. 2019년과 2020년: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을 만나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초등학교에서 보조 선생님으로 아이들을 만났다. 특별했던 점은 특수학급에서 봉사하며 특수교육대상자를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한 학기 동안 아이들과 함께 수업과 쉬는 시간을 함께하고, 때로는 담임선생님과 각각 한 명씩 맡아 수업을 하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돌이켜보면 봉사를 하면서 특별한 기술을 얻었다기보다는 마음가짐을 새롭게 할 수 있었다는 게 큰 것 같다. 특수학급에서 봉사하기 전까지 장애인과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러다 보니 최대한 이들을 평등하게 바라보려고 해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었다. 하지만 한 학기 동안 아이들과 꾸준히 만나며, 물론 도움이 필요하긴 하지만 더 큰 잠재력을 지닌 사람임을 알게 되었고, 한 명 한 명을 사람 그 자체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깨달음을 얻은 것을 제외하고는 즐거움으로 가득 찬 활동이었다. 특히 처음 만났을 때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질문에 답해주지도 않던 친구와 라포를 쌓으며 나에게 개인적인 이야기도 해주고, 마지막에는 손가락 하트까지 해주던 그 모습은 마음속에서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비록 방학이 되며 특수학급에서 봉사를 더는 할 수가 없었기에 다른 학교의 돌봄 교실에서 봉사를 지속하였지만, 이때도 자폐성 장애가 있는 학생을 만나 같이 활동할 수 있었다. 이때는 처음 학교에서 봉사를 시작했을 때의 나보다 더 학생들을 노련하게 대할 수 있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나의 경험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이번 학기에는 수업에서 특수교육과 관련한 보고서를 쓸 예정이며, 장애학생도우미로도 활동하게 되었다. 당시 봉사를 통해서는 직접적으로 경험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면 이번 학기는 경험뿐만 아니라 연구를 통해 더 잘 알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Ⅲ. 2021년: 코로나 시국에 발맞춘 비대면 봉사
2020년 코로나가 심해짐과 동시에 병원 실습을 시작하며 봉사를 잠깐 쉬었었다. 봉사를 다시 하게 된 건 올해 4월인데, 동아리를 통해 비대면 봉사를 경험해보았다. 내가 속한 학과 봉사 동아리는 본래 노인복지센터에서 노인을 대상으로 건강관리를 해주는 동아리이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복지센터가 문을 닫아 차선책으로 복지센터 유튜브 채널을 통한 건강관리 영상 제작이라는 새로운 봉사를 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떤 주제를 할까 고민하며 미리 책을 찾아보기도 했었고, 동아리원과 토의를 통해 어르신의 신체 건강 및 정신건강을 모두 다룰 수 있는 건강 박수 체조를 선택하였다. 건강을 다루는 학문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근거를 기반으로 한 영상을 만들고 싶었기에 주제가 정해진 이후에도 많은 논문, 발간자료들을 찾아보며 자료 정리를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우리는 노인을 대상으로 영상 제작을 하는 것이기에 내용이 잘 전달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였고, 따라서 너무 복잡한 내용은 제외하며 영상이 너무 길지 않고 재미있게 만들도록 노력했었다. 1학년 때 한국어 도우미로 활동하면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대상자의 특성을 고려하면서 활동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느끼게 해주었던 활동이었다.
우리가 만든 영상은 현재 유튜브에 업로드되어있다. 알고리즘을 타서 조회수가 급상승한다거나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영상의 원래 타겟인 어르신분들이 영상을 보며 함께 박수를 치시거나, 아니면 최소한 우리의 재롱(?)을 보며 미소라도 지으실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대상자분들을 직접 만난 것이 아니기에 피드백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이 한 가지 아쉬움으로 남아있지만, 그래도 현 시국에서만 해볼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었던 것 같다.
Ⅳ. 2021년과 2022년: 홈리스 클리닉에서 간호 봉사자로 활동하다
미래의 일인 2022년까지 적은 이유는 지금도 계속 활동하고 있고 홈리스 클리닉이 종료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활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돌봄 현장에서 소외되고 있는 노숙인들을 위해 시작된 것이기에 코로나가 종식되기 전까지는, 아니 노숙인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쉽게 끝나지 않을 듯하다.
클리닉 시작 5, 6주 차 정도부터 참여하기 시작했기에 비교적 초창기부터 활동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맡은 업무는 혈압과 혈당 체크로 매주 클리닉에 방문하는 노숙인의 혈압과 혈당을 재주고 이에 따라 간단하게 교육을 해주고 있다. 초기에 EMR이 없이 종이로 모든 걸 기록하여 치료의 연속성이 잘 보장되지 않았던, 즉 체계가 잡히기 이전부터 참여했기 때문에 초반에는 현재 맡은 업무보다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진료 PA 봉사자가 있기 전이나 초기에는 혈압 혈당을 재는 것 외에도 진료하는 데 있어 외부 도움을 요청하고 환자들 이동 동선 정리를 돕는 등 진료 흐름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게 돕기도 했었다. 병원 실습을 하며 간호사는 병원 내 모든 직종과 연락하며,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고 배웠는데 봉사를 하면서도 마치 병원에서 볼 수 있는 간호사의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이 외에도 초반에는 진료소 운영을 더 개선하기 위하여 봉사 마무리 후 매번 회의가 진행되었었는데, 그때 업무 프로세스, 감염관리 등 측면에서 의견을 냈었고 지금까지도 반영되고 있기도 하다.
현재는 진료소 체계가 안정화되어 내가 맡은 업무인 혈압 혈당 체크만 중점적으로 하고 있지만, 이것 역시 초반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우선은 의사, 간호사, 약사, 진행팀 등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하나의 진료소가 운영된다는 과정이 흥미롭기도 하고, 또 특히 혈당을 재주며 환자분들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재미있다. 혈당을 잴 때 바늘로 찌르기에 아프다고 약간의 투정을 부리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럴 때 ‘제가 안 아프게 해드릴게요’, ‘눈 꼭 감고 계셔요’ 등 살살 달래가면서 준비를 하고, 또 혈당 수치 확인에 필수적인 마지막 식사 시간을 여쭤보며 주의를 분산시키는 요령도 생겼다. 갈 때마다 수십 명의 혈압과 혈당을 재며 술기 실력이 느는 것은 덤이다.
긴 기다림에 지치시거나 절차와 맞지 않아 요구를 들어드릴 수 없을 때 화를 내시는 분들이 종종 계시는데, 그때도 꼭 나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대해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고, 환자분들께 공감해주는 여유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봉사를 꾸준히 참여하다 보니 간간이 새로 오시는 분들께 업무 프로세스나 술기를 알려드리는데, 병원에 남게 된다면 교육 간호사가 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좋은 경험으로 생각하고 있다.
처음 봉사에 참여하기 시작할 때 업무에 쉽게 적응하고 싶어 몇 주를 연달아 참석했었는데, 진료 담당 교수님께서 한번은 나에게 재미있냐고 여쭤보신 적이 있다. 아마 매주 오는 게 신기해 보이신 것 같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혼자서 혈압 혈당 업무를 맡은 가장 첫날, 즉 나의 독립과도 같은 날이었기에 그 흥분에 휩싸여 ‘지금까지 계속 둘이서 해 왔기에 혼자서는 못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할 만하다.’라는 동문서답을 해버렸었는데, 지금이라도 답해드리고 싶다. 재미있다고. 앞으로도 계속 참여하고 싶다고.
대학을 다니며 딱히 뭘 해야겠다고 계획한 적은 없었는데 지나고 보니 조금이라도 계속해 온 것은 봉사가 유일한 것 같다. 나에게 봉사가 주는 매력은 무엇일까?
가장 처음으로는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생각난다. 봉사를 통해 대상자이던, 함께 하는 봉사자이던 평소에는 쉽게 만나지 못하는 다양한 배경을 지닌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나의 시야도 더불어 넓어질 수 있었다.
또한, 진부하긴 해도 봉사를 통해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경험을 해볼 수 있었다. 봉사를 통해 내가 얻어가는 것이 분명히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남을 위한 것이기에 봉사는 그 어느 활동보다도 다른 사람의 입장을 잘 알 수 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했던 모든 봉사를 돌이켜보면 항상 내 행동, 내 말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고민하고,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도록 노력을 많이 했었고, 그만큼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이 글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교훈도 많이 있다.
이런 면에서 여러 곳에서 다양한 봉사를 했던 것도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한 곳에서 꾸준히 봉사하기 싫어서 여러 곳에서 한 것도 아니고 순전히 기회가 되는대로 살다보니 이렇게 된 것이지만 그만큼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기에 만족한다.
이제 나는 최소 내년에 졸업할 때까지는 클리닉에서 활동하고 있을 듯하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봉사를 통해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