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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사회봉사활동 체험수기] 노랗게 물들다

2021. 11. 4.

(성 명: 조재천)

부끄럽다. 그날을 떠올리면 부끄러움의 감정이 가장 앞선다. 내 이야기를 통해 다른 누군가가 나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노란 은행잎을 꽂아둔 페이지를 찾아서 일기장을 조심스레 펼쳐본다.

2018년 늦가을 아침, 물병과 수건을 챙긴 가방을 메고 발목에 밴드가 있는 츄리닝과 운동화 차림으로 기숙사를 나왔다. 이번에 참가한 봉사활동은 조금 이기적인 동기에서 시작되었다. 시각장애인과 1:1로 매칭되어 함께 산을 오르는 등산교실 자원봉사인데, 내가 만나보지 못했던 사람을 만나보고 싶은 욕심이 선한 마음보다 컸던 것 같다. 집결장소인 성신여대역 1번 출구 앞으로 나가니 봉사활동을 안내하는 인솔자분과 관광버스를 볼 수 있었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참가자 리스트에서 내 이름을 찾아 가리켰다. 시각장애인과 함께하는 봉사활동을 해보았냐는 물음에 ‘처음’이라고 답했다. 특별한 안내를 기대했던 걸까, 환영한다며 버스의 편한 좌석에 앉으라는 이야기에 머쓱하게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탑승하는 사람들이 보이는 창가 쪽 자리에 앉았다. 봉사활동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함께 등산하게 될 시각장애인은 어떤 분일지 궁금해하며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안전벨트의 착용을 부탁한다는 기사님의 말씀과 함께 버스의 시동이 걸렸다. 오늘의 날씨가 좋으니 등산을 다녀오는 데에는 무리가 없을 것 같다며 인솔자분이 마이크로 안내사항을 전한다. 우리의 목적지는 수원에 위치한 광교산으로 경기대학교 뒤편 주차장에서 형제봉을 오르는 코스라고 한다. 도시락과 간식으로 소보로빵과 초콜릿 바가 제공된다는 이야기에 박수 소리가 들린다. 아는 사람이 없는 버스 안에서 어떤 사람들이 타고 있는지를 떠올려보려고 귀를 쫑긋 세웠다. “이번이 벌써 등산교실 세 번째 참가이다.”라거나 “출발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배고프다.”라는 시시콜콜한 이야기 틈에 누가 시각장애인이고 아닌지의 구별은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등산로가 보이는 광장에 집결했다. 등산에 함께 오르게 될 두 사람을 모으기 위해 한 사람씩 호명한다. 나와 함께 광교산을 오르게 된 분은 최선생님이다. 최선생님은 안마사로 활동하는 전맹 시각장애인으로,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B1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본인을 소개하셨다. B1 등급은 장애인 스포츠 등급분류 기준으로 ‘빛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거나 빛을 감지하더라도 거리나 방향에 관계없이 손의 모양을 인식할 수 없는 상태’임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맑은 목소리와 그에 어울리는 나긋나긋한 말투는 내게 편안함을 주었다. 나도 내 이름을 말하며 학생이라고 소개했다. 최선생님은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가 어디인지를 물어보셨다. 서울대학교에 다닌다고 대답했더니, “숭실대학교와 비슷한 곳인가요?”라며 궁금해하셨다. 치의학과에 다닌다고 얘기했는데, “연세대학교에만 치과가 있는 줄 알았는데, 거기에도 치과가 있어요?”라고 물어보셨다.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로 나를 소개한 것 같아 두 물음에 그렇다고 조심스레 답했다.

두 눈을 감고 앞으로 걸어간다면 나는 몇 걸음 가지 못해 눈을 떠버리고 말 것이다. 시각장애인과 만나거나 이야기해본 적이 없기에 그들을 상상할 수 있는 내 발걸음도 몇 걸음 나아가지 못할 것은 자못 분명하다. 등산교실에 여러 번 참가했던 분들이 하나둘 출발하기 시작한다. 최선생님이 한 손에 쥐고 계시던 가방을 들어드리겠다고 했더니, “제가 도움이 필요하면 요청할게요.”라며 완곡하게 표현하셨다. 도움을 드리려는 호의가 거절당했다는 마음보다는 내 마음대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짐작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처음 등산교실에 참가한다는 것을 아시고는 내가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 알려주셨다. 최선생님이 편하게 걸을 수 있도록 팔을 잡게 해주고 앞에 계단이나 돌부리 같은 장애물이 있으면 미리 알려주면 좋겠다고 일러주셨다. 그렇게 나 혼자만의 등산이 아니라 함께 오르는 등산이 시작되었다. 발걸음의 보폭을 맞추는 것에서부터 최선생님 앞쪽의 장애물을 먼저 보고 알려드리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앞서간 다른 팀들과의 간격은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의 걸음걸이에 맞춰 목적지인 형제봉까지 오르면 되었다. 잠깐 쉬어가면 좋겠다는 최선생님의 말에 발걸음을 멈추고 앉을만한 곳을 둘러보았다. 평평하게 보이는 바위를 찾아 최선생님을 안내했다. 하늘이 되게 맑다는 이야기를 해드렸더니, “가을 하늘은 높다던데 얼마나 높아요?”라고 물어보셨다. “사람의 키는 2m면 엄청 크다던데 하늘은 얼마나 높은가요?”라는 연이은 물음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망설였다. 하늘은 우리가 올라가야 할 산보다 조금 더 높이 위치한다고 말씀드렸다. 지금도 내가 한 대답이 괜찮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최선생님의 어머니께서 등산가는 당신을 위해 사주셨다는 바지와 운동화를 자랑하셨다. 50만원으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부모님의 형편에서, 어머니가 아버지 몰래 사주셨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아이같이 순수한 미소로 옷이 어떤 것 같으냐고 물어보시는데, 색이 가을 단풍과 잘 어울린다는 말을 꺼내려다 등산하기에 편하고 튼튼할 것 같다고 대답했다. 카키색에 가까운 짙은 회색빛의 평범한 바지와 분홍색 신발끈이 포인트인 보통의 운동화지만, 그 모습이 어떻든 최선생님에게는 특별한 등산복, 등산화이지 않을까.

함께 발맞추어 걸었던 등산로는 최선생님과 나의 거리를 꽤나 좁혀준 것 같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시냐는 나의 물음에, 김치는 매콤한 것보다는 아삭한 동치미를 좋아하고 밍밍한 음식을 선호한다고 말씀하셨다. 최선생님은 점자책을 읽는 것이 힘든 일이라고 알려주셨다. 3시간을 집중해서 100쪽을 읽는 것이 벅차다고 한다. 점자를 읽어본 적도 읽어보려 노력한 적도 없는 나는 어느 정도의 분량일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오디오 테이프로 책을 ‘듣는다’고 하셨는데, 온전히 음성에 집중해야 하니까 쉽지 않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최신 드라마와 영화도 듣고 있다며 자랑처럼 건네는 말씀에 괜스레 마음 한편이 미어졌다. 내게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을 감수해야하는 것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당장 눈앞의 등산로에는 왜 이렇게 함정이 많은지……. 불편함을 넘어 위협적인 것들로 가득해 보였다. 등산로의 계단은 저마다 폭이나 높이가 다르고 갑자기 길어지는 부분이 나타나기도 했는데 시각장애인이 인식할 수 있는 블록이 존재하지 않았다.

최선생님은 비행기를 타고 여행 가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셨다. 최선생님은 어머니와 함께 홍콩에 다녀왔던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내가 다녀온 홍콩을 떠올리며 반가운 마음으로 맞장구쳤다. 최선생님이 맛있었다는 육즙 가득한 만두를 떠올려본다. 같은 공간을 다녀와도 저마다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 부분은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각자의 낯설었던 감각을 공유하고 상대방의 감정을 상상하는 과정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작은 노력이지 않았을까. 최선생님은 “연예인이 되어 보이지 않는 것이 크게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라며 당신의 꿈에 대해 얘기해주셨다. 함부로 내 판단을 섞으면 안 될 것 같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는 호응조차 해드릴 수 없었다. 최선생님은 갑자기 하늘을 향해 탄성을 내시고, 걸음을 멈추어 일본어로 소리를 지르셨다. 우리 곁을 지나는 등산객은 무어냐고 눈을 흘기거나 불쾌한 시선을 던지며 지나쳤다. 함께하는 나만큼은 최선생님의 답답함이나 먹먹함의 설움을 공감하려고 노력했어야 했다. 곁에서 큰 힘이 되어드리지 못할망정 남들의 따가운 시선에 창피한 감정을 조금이라도 느꼈던 내 모습이 몹시 부끄럽다.

우리는 산길을 따라 오르다가 그만 멈추기로 했다. 더 이상 올랐다가는 오후에 해야 할 안마사 일에 지장이 생길 것 같다며 최선생님은 더 오르지 못하겠다고 말씀하셨다. 형제봉까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보이지만, 조금만 더 힘내자며 산행을 이어나갈 수는 없었다. 옆으로 넓적한 바위에 최선생님과 나란히 앉았다. 우리보다 앞서갔던 팀들이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목표하는 곳까지 도달하지 못한 것에 대한 내 아쉬움을 느끼셨던 걸까. 다음번에는 체력 안배를 잘해서 형제봉까지 함께 가보자고 말씀해주셨는데, 서투른 가이드에게 너무나도 힘이 되는 말이었다. 최선생님은 자리에서 일어나시더니 단풍이 곱게 물든 나무로 자신을 안내해달라고 하셨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어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셨다. 최선생님이 가을 기운을 한껏 느끼는 표정을 지으실 때를 놓치지 않고 촬영 버튼을 눌렀다. 어떻게 찍는 것이 최선생님의 마음에 드는 사진일지 고민하며 요리조리 움직여가며 사진을 찍어드렸다. 내 손바닥이나 엉덩이에 흙이 묻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올라왔던 길을 조심히 되돌아가고 있었다. 하산하는 등산로에서 최선생님이 조금 더 능숙하게 잘 내려오시는 것 같았는데 안내하는 입장에서 뿌듯했다. “선생님은 체력이 굉장히 좋으시네요.”라는 내 말에 최선생님은 으쓱하시며 “저 원래 체력이 좋아요.”라고 대답해주셨다.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는데, 최선생님은 오후에 있는 안마사 일에 혹여나 늦을까 봐 서둘렀던 것이다. 장애인을 위한 전용 콜택시인 복지콜을 성신여대역에 몇 시까지 오라고 미리 예약까지 해둔 상태였다고 한다. 등산로를 빠져나와 다른 팀들이 다 내려올 때까지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최선생님이 예쁜 단풍잎과 은행잎을 구해줄 수 있냐는 부탁을 하셨다. 주변에는 노랗고 빨갛게 물든 잎들이 바닥에 놓여있었는데, 내가 전할 수 있는 마지막 마음일 것 같아 고른 잎을 찾아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알록달록한 잎을 한아름 담아놓은 비닐봉지를 최선생님에게 전해드리며 등산교실의 내 역할은 마무리되었다. 나도 노란 은행잎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금방 떨어진 것 같이 반듯한 잎을 서너 장 주워 버스에 올라탔다.

시각장애인과 발맞추어 산을 올라야 함에도 아무런 준비 없이 집을 나섰다는 것이 부끄럽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나를 믿고 등산한다는 것의 막중한 책임감을 생각하지 못했다. 시각장애인이 어떤 불편함을 겪고 있는지 감히 상상할 수 없었고, 내가 무심코 전하는 말과 행동이 불편함을 느끼게 할 수 있음은 고려하지 않았다. 어쩌면 최선생님이 깜깜한 어둠에 대해 무지한 철부지를 데리고 단풍이 만개한 산길을 안내해준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최선생님에게 도움을 드려서 함께 등산할 수 있었다는 말보다는, 최선생님 덕분에 세상을 조금 더 넓게 바라볼 수 있게 되어 감사한 시간이었다고 말해야 함은 당연하다. 서투르고 어설픈 일일 가이드의 한마디, 한걸음이 최선생님의 마음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기를 욕심내어 바라본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 심연이 존재합니다.”라는 김연수 작가의 소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속의 문구가 떠오른다. 건널 수 없을 만큼 깊어 보인다고 주저하기보다는, 작은 한걸음이라도 심연을 향해 내디딜 용기 있는 의료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경험해보지 않았다고 없는 일이 아니듯, 누군가의 지난한 삶의 궤적을 나의 시선으로 재단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바짝 마른 은행잎을 일기장 사이에 고이 올려놓는다. 우리가 모르는 어떤 상황이나 대상을 마주한다면 물어보고 상상해보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전히 샛노란 은행잎은 몇 번이고 나를 부끄러움으로 물들일 준비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