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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변이 연구로 진화적 신규성 기전을 규명: 최소한의 발현 변화만으로도 진화적 신규성을 획득함을 증명

2024. 7. 3.

- 진화적 신규성: 문제는 단백질의 구조가 아니라 언제 어디에서 발현되는가였다!! -

[연구필요성]

진화의 과정에서 새로운 형질은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라는 질문은 진화생물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다. 다양한 기전이 제안되어 있으나 실험적으로 실증해 보인 예는 많지 않다.

생태계에는 수많은 종류의 종간 상호작용이 존재한다. 편승(phoresy)은 종간 상호작용의 한 종류로, 생명체가 보다 더 큰 동물 등에 올라타서 이동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호작용에는 걸맞게 발달한 특별한 형질이 존재하기도 하는데, 여러 사례들이 제시되어 있지만 상호작용 행동의 조절 기전에 대해서 실험 유전학적 연구가 이뤄진 바는 거의 없다.

[연구성과/기대효과]

본 연구진의 양희승 연구원은 전 세계에서 채집된 예쁜꼬마선충의 히치하이킹 행동에 차이가 있음을 확인하고, 이에 대한 유전적인 분석을 통해 스테로이드 생합성 효소 (steroidogenic enzyme) 유전자가 행동 차이를 조절함을 확인하였다.

유전자의 아미노산 서열이 아닌 조절부위(promoter) 서열 차이로 인해 특정 신경아교세포(glial cell)에서의 발현 유무가 조절됨에 따라 행동에 차이가 나타남을 확인하였다.

히치하이킹 행동을 잘하는/못하는 2가지의 서로 다른 서열이 예쁜꼬마선충의 오래전 집단에서부터 균형선택(balancing selection)을 통해 유지되어 왔음을 집단유전학 분석을 통해 확인하였다. 히치하이킹을 낮추는 서열이 오히려 특정 상황에서 빠른 번식을 유도하였으며, 히치하이킹과 번식 속도의 트레이드오프가 균형선택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상 본 연구는 행동 분석, 양적유전학 분석, 집단유전학적 분석을 통합하여 행동 차이의 유전적 기반을 단일유전자 수준에서 확인하였으며, 진화적 신규성이 특정 세포에서 유전자의 발현 조절로 이루어지는 사례를 성공적으로 제시하였다. 이는 세계적 권위의 학술지인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PNAS)에 2024년 7월에 발표되었다.

[본문]

행동은 동물의 가장 복잡한 형질 중 하나이다. 행동 조절에 대한 유전적인 원인을 규명하는 것은 생물학의 주요 질문이자 난제이다.

본 연구는 1) 예쁜꼬마선충이 지구상 거의 모든 곳에서 발견되며, 2)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진화적 변화를 오랜 기간에 걸쳐 체득했을 것이라는 점과, 3) 체득된 변화가 세대를 이어 나타나기 위해서는 생식세포를 넘어가는 유전자 속에 새겨져 있어야 할 것이라는 자연스러운 논리적 기반 위에서 진행되었다.

본 연구가 주목한 현상은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가기 위한 선충의 히치하이킹 행동이었다. 예쁜꼬마선충은 자연상에서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boom and bust’ 생활사를 가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먹이가 풍부한 환경에서 집단이 빠르게 번성하고, 먹이가 고갈되면 다시 빠르게 쇠퇴하는 양상이다. 어린시절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선충은 다우어(dauer)라는 휴면 상태의 유충으로 발생하게 되고, 다우어 유충은 고개를 들고 흔드는 히치하이킹 행동(닉테이션)을 보인다. 닉테이션은 열악한 환경에서 발생한 다우어가 다른 서식지로 이동하여 다시 집단이 번성할 수 있도록 돕는 행동으로, 새로운 서식지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본 연구진은 이러한 행동이 지구상 다양한 곳에서 발견된 예쁜꼬마선충 품종들에서 다른 빈도로 일어난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 이유가 되는 유전자를 찾아가는 연구를 하게 되었다. 전장유전체 연관분석(Genome-wide assocation study, GWAS) 등 다양한 유전학적 분석 기법을 도입하여, 행동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염기 서열 변이를 단일 유전자 수준에서 규명하는데 성공하였다.

진화의 과정에서 새로운 성질이 나타나는 (또는 없어지는) 분자적 기전은 일반적으로는 기존 단백질의 새로운 변형, 즉 새로운 아미노산 서열의 출현으로 설명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본 연구에서는 단백질 자체의 구조의 변화가 그 분자적 기전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히려 특정 유전자의 발현이 특정 세포에서 특정시간에 있는가 없는가가 형질의 유무를 결정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본 연구에서 규명한 유전자는 스테로이드 생합성에 관여하는 효소 유전자인데, 효소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의 변화가 아닌 유전자의 프로모터(promoter)의 서열 변이가 행동을 조절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어 유전자의 발현 양상에 대한 연구 결과, 효소가 선충의 신경아교세포(Glial cell)에서 발현되면 히치하이킹 행동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닉테이션을 높이는 서열이 선충의 번식에 유리하게 작용하여 선택될 것으로 쉽게 예상되지만, 집단유전학적 분석 결과는 해당 부위의 두 가지 유형(닉테이션이 높은/낮은)의 서열이 예쁜꼬마선충의 오래전 집단에서부터 함께 존재하였음을 보였다. 닉테이션을 낮추는 서열이 도태되지 않고 함께 유지되어올 수 있었던 점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는데, 본 연구에서는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난 이후에는 닉테이션을 낮추는 서열을 가진 선충이 오히려 빠르게 번식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이는 히치하이킹과 번식 속도의 트레이드 오프에 따라 두 가지 유형의 염기서열이 공존할 수 있었음을 암시한다.

본 연구의 의의는 히치하이킹 행동의 새로운 조절 기전을 확인한 점과, 진화적 신규성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유전자의 발현 조절만으로도 가능하다는 점을 자연변이의 존재로부터 확인했다는 것에 있다.

[연구결과]

Glial expression of a steroidogenic enzyme underlies natural variation in hitchhiking behavior

Heeseung Yang, Daehan Lee, Heekyeong Kim, DanielE. Cook, Young-ki Paik, Erik C. Andersen, Junho Lee1
(PNAS, https://www.pnas.org/)

[용어설명]

1. 닉테이션 행동
  • 닉테이션 행동은 열악한 환경(온도가 너무 높거나, 굶주리거나, 주변의 개체 밀도가 높을 시)에서 발생하는 다우어라는 특수한 유충에서 나타나는 행동으로, 선충이 몸을 세우고 흔드는 행동이다. 다우어는 닉테이션 행동을 통해서 새로운 서식지로 이동할 수 있다. 실제로 닉테이션을 잘 하는 다우어가 초파리, 쥐며느리 등에 올라타서 이동할 수 있음이 실험적으로 검증되었다. 닉테이션은 예쁜꼬마선충 뿐 아니라 다른 여러 선충 종에서도 확인된다.
2. 프로모터(Promoter)
  • 프로모터는 유전자의 단백질 암호 서열 앞에 위치하는 유전자의 조절부위이다. 중합 효소가 결합하여 전사가 시작된다. 프로모터 서열은 유전자의 발현에 매우 큰 영향을 준다.
3. 균형선택(balancing selection)
  • 균형선택은 여러 대립유전자가 집단의 유전자 풀에서 임의적인 정도보다 높게 적극적으로 유지되는 자연선택 과정을 말한다. 균형선택은 집단에서 유전적인 다양성을 높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