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천제도와 정당조직의 문제점 및 정당개혁의 주요 쟁점 논의 -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민주주의 클러스터(책임교수 임경훈)는 12월 12일(화) 국회의원회관 제6간담회의실에서‘정당 혁신의 방향’이라는 주제로 최형두 의원(국민의힘), 김한정 의원(더불어민주당)과 함께 학술회의를 개최하였다. 회의는 두 세션으로 나눠 진행되었는데, 첫 번째 세션에서는 현역 의원과 언론인, 정치평론가 등 전문가들이 라운드테이블 형식으로 토론을 진행했으며, 두 번째 세션에서는 ‘정당 개혁의 주요 쟁점’에 대해 학자들은 물론 정당의 당직자 출신들이 함께 모여 실질적인 논의를 이어갔다.
첫 세션의 발제에서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윤왕희 박사는“현재 양당의 공천제도는 유사하게 수렴돼 있는 상태로 일정한 정도의 제도화가 이뤄졌지만, 공천 결과에 대한 만족도는 높지 못한 상황”이라는 설명과 함께“전체적인 정당조직의 형해화를 방치한 채, 공천제도에 대한 기술적인 조치만으로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 즉 공천제도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토대와 조건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토론에 나선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은 제왕적 당 대표가 공천을 직접 좌지우지 하는 문제를 지적하며,“미국식 오픈프라이머리를 실제로 정착시키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경선 결과가 정치고관여층이나 극성 지지층에 의해 결정되지 않으려면 정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일반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김한정 의원은“현재 한국 정당들의 공천제도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긴 하지만, 공천이나 경선 과정에서의 경쟁은 어느 정도 작동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불확실성이 보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선룰도 작동하고 있고, 여론도 상당히 반영되고 있으며, 교체율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다만, 당원에 대한 자격요건을 좀 더 높이는 것을 포함해 22대 국회 초기에 정당개혁 어젠다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성한용 한겨레신문 선임기자는 “해방 이후부터 살펴보면 비교적 우리 나라는 정치가 작동을 해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1990년대부터 반정치주의가 심해졌다는 문제가 있다. 기득권 세력과 관료가 반정치주의를 확산시킨 측면이 있는데, 2000년부터 시작된 정보화 혁명이 이를 한층 더 심화시켰다. 그러나 대의제가 갖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숙의민주주의이다. 당원 폭증 등 직접민주주의적인 요구가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정당 내에서도 숙의성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의 개혁을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 민컨설팅의 박성민 대표는 “한국의 대통령제가 제왕적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여야 정당들의 문제, 특히 공천권을 권력자들이 행사하는 문제는 소선거구제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소선거구제를 없애고 한 선거구에서 4인 이상 뽑는 중대선거구제로 가야 정당의 통제력이 약해질 수 있다. 공천도 미국식 오픈프라이머리로 진행할 것을 제안한다. 지금의 당원은 대부분 가짜 당원이다. 과거에 우리가 알고 있던 정당 모델은 버려야 한다. 지금은 사실상‘텔레그램’이 정당이다. 정당이라는 제도를 시대 변화에 맞게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두 번째 세션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혁신위원을 지냈던 윤형중 LAB2050 대표와 경희대학교 조석주 교수,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이승원 박사가 각각 발표를 맡았다. 먼저, 윤형중 대표는‘정당의 정책 역량 강화를 위한 개혁 방안’에 관한 주제로 ‘2023년 김은경 혁신위원회’당시의 경험을 상세히 소개하였다. 구체적으로, 정당의 정책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정당법의 유급 사무직원수 제한 폐지, 정책을 중심에 둔 정당 운영, 18개 부처에 대응되는‘책임국회의원’을 한 명씩 두는‘예비내각’ 구상, 정당의 정책위원회 개편, 정당 정책연구소의 확대, 정책대변인 직제의 신설 등이 필요하다는 제안이었다. 이에 대해 김용태 국민의힘 전 최고위원은 “개인적으로 최고위원회의나 기타 당의 회의에서 발언할 때‘이게 대통령이 추진하는 정책과 다른 점이 있지 않을까’라는 것에 대해 자기검열을 하게 되는 걸 경험했다. 당에서는 권력자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핵심은 공천권에 있다. 지금은 권력이 권력을 재생산하는 구조이다. 정책중심 정당은 이 구조를 깨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아마 미국식의 공천시스템이었다면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희대 조석주 교수는 “정당체제가 시민사회의 새롭게 등장하는 균열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개방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신생정당의 설립이 활성화되고 체제의 진입이 용이하도록 정당의 자율성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다차원적 균열이 완전한 무질서가 아닌 일정한 패턴을 갖는 경쟁이 될 수 있는 정당체제가 되기 위해서는 기성 정당의 공천제도를 비롯한 정당 내적 결정이 법을 비롯한 국가의 공식적 제도에 의해 규제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즉, 한국 정당정치의 개혁을 위해서는 제도화와 자율성의 타협점이 제시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회입법조사처 전진영 정치의회팀장은 “정당의 외적 자율성을 키워주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정당법 등 규제를 다 풀면 정당의 제도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한국에는 다당제에 대한 신화가 존재하는 것 같다. 3당제, 4당제가 됐을 때 그게 과연 제도화된 체제라고 말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승원 박사는 “포스트 민주주의 시대에 탈정치와 과두제화에 따른 공통 세계의 축소”를 지적하면서 “정당정치와 국민 주권 정치의 균형을 통한 민주적 정치 공간의 재구성”을 제안했다. 한국의 거대 양당이 새로운 정치 실험과 이를 통한 새로운 정치적 주체 및 정당의 발흥을 억제한다면 이는 과두제를 공고화하는 것이 될 뿐이라는 사실, 따라서 탈과두제화의 핵심은 시민 대표성의 확장에 놓여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동시에,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성 정치권의 신당 논의는 아메바식 자기 복제 또는 세포 분열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탈과두제화를 위해서는 정당법, 선거법,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제, 원내교섭단체 제도 개선 등의 조치가 병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민주연구원의 한상익 박사는 “정당 외부에 있는 분들이 정당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정당 안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아주 구체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정당은 명분, 가치 등과 함께 이익, 현실 등이 함께 작동하는 곳이다. 따라서 정당을 지나치게 신성시 하거나 혹은 악마화 하는 것은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정당 개혁에는 시간과 돈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거에 비해 한국의 정당, 정치는 개선된 부분도 많다. 백만 명의 당원들이 투표하는 것을 두고 과두제화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학술회의를 주관한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민주주의 클러스터의 임경훈 교수(정치학)는 “오늘 이 자리가 총선을 앞두고 정당정치의 관점에서 현재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진단해 볼 수 있는 값진 기회가 된 것 같다. 대중정당 시대의 정당 모델로 돌아가는 것이 과연 혁신이라고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고, 비례대표를 늘리자는 요구는 많은데 정작 당내 파벌, 당내 다양성은 용인되지 않는 현실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특히 공천제도와 관련해서 문제가 되고 있는 대통령제라는 권력구조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의회 민주주의를 약화시키지 않는 방향의 개혁이 이뤄질 수 있도록 다양한 논의를 모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학술회의의 의의와 민주주의 클러스터의 향후 방향성에 대해 언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