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추와 무의 속간교잡종 배무채
배추과(Brassicaceae)에는 배추, 양배추, 유채, 브로콜리, 갓, 무 등 농업적으로 중요한 작물들이 속해 있으며, 매우 다양한 형태적 특성이 존재한다. ‘씨 없는 수박’으로 잘 알려진 우장춘 박사는 1934년 배추과에서 종간 교배에 의해 새로운 종이 탄생할 수 있는 ‘종의 합성’ 이론을 ‘우의 삼각형’ 모델로 제시한 바 있다. 예를 들어 유채는 배추와 양배추 간의 교배를 통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배추와 양배추의 염색체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종간 잡종 식물이다. 그러나 종간 교배는 진화적 거리가 멀수록 교배가 억제되는 ‘교배장벽’ 효과로 인해 자연적으로 거의 일어나지 않으며, 흔히 생육불량, 유전적 불안정성, 불임 등의 문제점을 수반한다.
그러나 간혹 이러한 교배장벽을 극복한 새로운 교잡종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배무채는 다른 속(屬)에 속하는 배추와 무의 교배에 의해 탄생한 속간 교잡 식물이다. 배무채는 기대와는 달리 (풍성한 잎과 튼실한 뿌리 대신) 결각이 있는 무의 잎과 비대가 적은 배추 뿌리를 갖고 있다. 그러나 배추와 무의 특성을 동시에 지님과 동시에 우수한 임성과 유전적 안정성을 갖고 있어 식물의 교배 친화성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재료이다.
□ 배추와 무 이질 유전체 공존에 의한 배무채의 유전적 안정성 획득
배추와 양배추의 교배를 통해 합성된 종간 교잡종인 유채의 경우 염색체 상에 진화적으로 유사한 부분들이 남아있어 감수분열 중 비상동염색체 간의 접합 및 교차가 흔히 발생한다. 이는 염색체 구조의 변화를 야기하여 주로 전위(translocation), 소실(deletion) 혹은 이수성(aneuploidy) 등의 비정상적 염색체를 갖는 배우자를 형성하게 되며, 따라서 임성에 심각한 문제점을 가져온다. 그러나 배무채의 경우 진화적으로 거리가 먼 배추와 무 염색체 간의 유사 부위가 거의 존재하지 않아 비상동염색체 간의 원하지 않는 교차가 거의 일어나지 않으며, 이는 배추와 무의 염색체가 하나의 핵 안에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동성 유전인자를 처음으로 보고하여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바바라 맥클린톡(Barbara McClintock)은 종간교잡 시 염색체의 불안정 및 이동성 유전인자의 비정상적 활성화로 인한 유전체 쇼크(genome shock) 현상을 잡종 개체의 유전적 안정성을 저해하는 주요 요인으로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배무채의 경우 비상동염색체 간의 교차 억제와 더불어 DNA 메틸화를 통한 이동성 유전인자 활성 제어를 통해 안정적인 염색체 구조를 유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 우장춘 박사의 종의 합성 모델 확장 및 식물 진화의 재해석
다윈의 진화론은 모든 생물 종은 변이의 축적과 자연선택에 의한 것임을 주장한 학설이며, 이의 핵심은 점진적이며 비가역적인 진화로 요약될 수 있다. 이미 상당한 변이가 축적된 종 간에는 교배장벽에 의해 자연적으로 교배가 차단되며, 이는 독립적인 종을 구분하는 가장 기본적인 기준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장춘 박사의 ‘우의 삼각형’ 모델이나 배무채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미 분화된 종 간에도 교배를 통해 간헐적으로 새로운 종의 합성이 가능하며, 놀랍게도 유전체의 비유사성이 합성종의 염색체 안정성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증명하였다.
다윈은 백악기 이후 속씨식물 종의 폭발적인 증가와 다양성을 기존의 진화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어 이를 ‘끔찍한 미스터리’(abominable mystery)라고 명명하였다. 따라서 배무채는 ‘우의 삼각형’ 모델을 속간 교배 수준으로 확장함과 동시에 기존 다윈의 진화론에 덧붙여 새로운 진화 경로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매우 흥미로운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새로운 품종 육성에 많이 활용되고 있는 교배육종 기술 개발 및 잡종강세 현상 연구에도 큰 기여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