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의 발생과 전이 과정에는 암을 촉진하거나 억제하는 단백질이나 유전자가 개입한다. 대표적인 것이 손상된 세포가 스스로 죽도록 만들어 암으로 진행하는 것을 막는 p53 단백질이다. 암 환자 절반 이상은 p53 단백질이 돌연변이를 일으켰거나 제 기능을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연구진이 p53 유전자가 파괴되지 않도록 안정화하는 단백질을 발견하고, 이 단백질이 암세포 사멸(死滅) 과정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번에 밝혀진 단백질 신호체계를 활용하면 신개념 항암제를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백성희 교수와 포스텍, 숙명여대 공동연구팀은 “암으로 정상 DNA가 손상되면 몸 안에서 DNA 손상 신호가 발생해 ‘RORα’란 단백질을 활성화하고, 이 단백질이 암 억제 기능을 가진 p53 단백질을 안정화시켜 궁극적으로 암 발생을 억제한다”고 12일 밝혔다. 암이 악화되는 사람들은 이 암 억제 단백질이 제대로 기능을 못하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 성과는 생명과학 분야 권위지인 ‘Cell’의 자매지 ‘Molecular Cell’(IF: 14.194) 9일자 표지논문으로 실렸다.
RORα 단백질은 소뇌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물질로 지난해 2월 백 교수팀은 이 단백질이 대장암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처음 밝혀냈다. 이번에는 대장암 이외 암의 억제 과정에도 관여한다는 사실을 처음 규명한 것이다.
백 교수는 “이번 연구는 오랫동안 소뇌 기능 장애를 일으키는 유전자로만 알려진 RORα 단백질이 p53 암 억제 유전자의 세포 사멸 기능을 직접 조절함으로써 암 억제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규명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p53을 이용한 암 치료제 개발 가능성을 높였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백 교수는 세계 최초로 암 전이 억제 유전자와 조절 메커니즘을 규명해 항암치료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공적을 인정받아 9월 로레알코리아,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여성생명과학기술포럼이 선정하는 올해 ‘한국 로레알-유네스코 여성생명과학상’ 진흥상을 받았다.
서울대학교 연구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