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하얀 가운을 입고 환자 앞에 서는 대신 실험실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DNA 통계와 분석에 매달리겠다고 결심한 한 의대생이 있었다. 의사라는 장래가 보장된 길보다는 모든 걸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연구원`이 되기로 했다.
그 후 3년, 친구들이 레지던트 2년차로 바쁘게 병원을 뛰어다닐 때 그는 27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학술지인 `네이처(Nature)`에 이름을 올렸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사람의 유전체 분석에 성공했다는 내용의 논문이었다. 서울대 의대 유전체의학연구소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주영석 씨 얘기다. 서울대 의대 한 학년당 학생수는 180명. 보통 이들 중 1명만 기초연구를 하기 위해 학교 연구실에 남는다.
주씨의 `생각`은 현실로 돌아왔다. 주씨가 주요 연구자로 참여한 한국인 유전체 서열 지도는 `개인별 의학 맞춤 시대`를 가까운 미래로 성큼 앞당겼다.
어릴 때부터 막연히 생화학 관련 공부를 하겠다고 생각했지만 대학원에 진학할 때 고민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안정적인 길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학을 연구하는 아버지의 응원이 큰 힘이 됐다.
아버지는"재미를 느낄 수 있을 만한 일을 하라"며 다른 길을 가려는 주씨를 응원했다. 주씨는"본과 1학년 때만 해도 나처럼 기초의학을 하려고 했던 친구들이 20명 정도는 있었지만 대부분 임상 쪽으로 바꿨다"며"본인들이 공부를 하면서 꿈이 바뀐 경우도 있지만 부모님들이 `미래가 불안하다`며 반대해 꿈을 접은 친구들이 대다수"라고 말했다.
주말인 지난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 의대 캠퍼스에서 만난 주영석 씨는 편안한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이었다. 주씨는 이 복장이 `연구하기 편한 옷`이라고 말했다. 그는"연구를 하다 보면 궁금한 게 많아지고 이를 해결하려다 보면 집에도 못 들어간 적도 많다"며"연구가 더디면 짜증날 때도 있지만 용케 포기를 하지 않는 걸 보면 아마도 내 몸속에 도전의 `DNA`가 살아 숨쉬는 모양"이라며 활짝 웃었다. 네이처에 논문 제1저자로 이름을 올린 것에 대해서는"운이 좋았던 것 같다"며"앞으로의 연구생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꿈은 계속 유전체 분야를 연구해 `맞춤 치료` 등 의학에 접목하는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후회한 적이 없느냐"고 물어보자 그는 단호히"없다"고 대답했다. 조씨는"내가 등 떼밀려 여기까지 온 게 아니기 때문에 후회를 하지 않는다"며"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일이라 힘들더라도 즐겁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자기보다는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에 임상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단다. 조씨는"자기가 흥미를 느끼는 분야가 분명히 있는데 그쪽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이 더 슬픈 일 아니냐"며"우리나라가 경제적인 부분에 많이 치우치다 보니 의사가 돈을 많이 벌기 때문에 그쪽으로 가야 한다는 주변의 압력을 받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고 말했다.
올해도 그가 있는 기초의학대학원에는 서울대 의대 출신 후배가 한 명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의학대학원이지만 의대 출신이 아닌 자연과학이나 공학 쪽 전공자들이 대부분이다. 조씨는"후배들에게 이쪽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며"하지만 앞으로의 의학 발전을 위해서는 사회의 시선이 크게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9. 8. 9
서울대학교 홍보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