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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 공학도의 스토리텔링 연구에 대하여: 제7회 스누인의 연구일지

2025. 4. 30.

제7회 스누인의 연구일지 ‘문과생이었지만 공학을 합니다: 학문 융합이 만든 새로운 길’ 공식 포스터
제7회 스누인의 연구일지 ‘문과생이었지만 공학을 합니다: 학문 융합이 만든 새로운 길’ 공식 포스터

25일,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열린 제7회 ‘스누인의 연구일지: 문과생이었지만 공학을 합니다: 학문 융합이 만든 새로운 길’ 강연에서 공학이라는 학문에 인문학적 숨결을 불어 넣은 이재성 연구자의 이야기가 소개됐다. 강연 진행을 맡은 임은선(중앙도서관 학술연구지원서비스) 직원은 “‘스누인의 연구일지’는 2023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행사로,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선배 연구자의 학습과 연구 전략을 공유하는 장을 마련해 선후배 연구자 간 교류를 활성화하고 학내 구성원의 연구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기획됐다”라며 행사 운영 취지를 설명했다.

2024년 2월에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박사과정을 마친 이재성 박사의 연구 여정은 일반 공학 연구자의 경로와 사뭇 달랐다. 이 박사는 고등학교 시절, 역사와 문학을 사랑하는 문학 소년이었다. 자유전공학부에 입학해 문학, 철학, 공학의 언어들을 동시에 탐구하며 질문 방식 자체에 주목했다. ‘왜’라는 질문을 놓치지 않았고 공학 연구에서도 ‘스토리텔링’을 핵심 키워드로 삼았다. 강연은 인문학과 공학 사이를 오가며 사유하고 설계해온 이 박사만의 유일무이한 ‘이야기’ 그 자체였다.

문학을 사랑했던 소년, 공학을 만나다

강연을 진행하고 있는 이재성 박사의 모습
강연을 진행하고 있는 이재성 박사의 모습

이재성 박사는 자신을 ‘책 읽고 글 쓰는 것을 좋아했던 학생’이라고 소개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교내 신문을 만들고 문학 작품을 탐독하며 철학적 사유를 즐겼다. 이후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에 입학해 ‘주제탐구세미나’ 강의를 수강하며 ‘지식’이라는 주제를 인문학, 과학, 철학적으로 조망하는 방법을 공부했다. 그는 인문학이 이유와 방향을, 공학이 메커니즘과 성능을 탐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같은 질문도 학문에 따라 전혀 다른 접근법을 취한다는 점은 진로와 연구 방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어느 하나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그는 결국 공학과 인문학이라는 두 학문 모두를 아우르는 학문 탐구를 이어가기로 했다. 그러나 공학은 그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 박사는 자신의 실제 성적표까지 공개하며 ‘수학도 과학도 모두 약했다’, ‘교수님들의 언어는 처음엔 정말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웠다’라고 회고했다. 어려움 속에서 방향을 잃기도 했던 학부 시절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던 그에게 단순한 학업적 성취보다 중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맥락을 이해하고 문제를 정의하는 힘이었다. 이 박사는 “연구란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라고 말하며 어떤 현상이 단지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왜 발생했으며 어떤 사회적, 인간적 의미를 갖는지 질문하는 것을 강조하며 이 과정에서 그가 가진 인문학적 감수성이 큰 힘을 발휘했다고 이야기했다.

나만의 이야기를 담은 연구 만들기

대학원 진학 이후 그는 재료공학부의 ‘고온열화학연구실’에 소속되어 유리의 열역학적 특성을 연구했다. 이 박사의 연구 주제 중 하나는 유리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내화재와 유리의 상호작용이다. 고온에서 용기와 유리, 대기 사이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반응을 관찰하고, 그 반응이 유리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분석하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 차가운 수식과 실험이 전부일 것 같은 연구지만, 이 과정에도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이 박사는 결과를 해석하고 과정을 유추하는 과정은 하나의 서사를 엮는 일과 같다고 말했다. 연구 설계, 실험, 해석, 발표까지 전 과정을 하나의 ‘이야기 구조’로 파악했다. 문제를 정의하는 것이 서론이라면, 실험과 데이터 해석은 본문, 논문과 발표는 결말에 해당했다. 이를 ‘숫자를 이야기로 번역하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복잡한 화학반응과 열역학 데이터를 기반으로 공정을 해석하고 새로운 유리 조성이나 기존 공정을 개선해나가는 과정은 단순한 기술적 분석이 아니라 인간의 이해를 돕는 스토리 구성이기도 했다. “과학은 사실을 말하지만 사람은 이유와 맥락에 공감한다”라는 설명은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을 짚어냈다.

이재성 박사의 강연 발표자료: 인문학적 접근과 공학적 접근의 차이에 대해 설명(좌) / 이재성 박사의 강연 발표자료: 누리유리 공정 최적화 연구 소개 (우)
이재성 박사의 강연 발표자료: 인문학적 접근과 공학적 접근의 차이에 대해 설명(좌) / 이재성 박사의 강연 발표자료: 누리유리 공정 최적화 연구 소개 (우)

이 박사는 자신의 대표 연구 중 하나로 ‘누리유리 공정 최적화’를 소개했다. 그는 용기 재료와 유리 조성 사이의 반응을 추적해 문제의 원인을 밝히고, 이를 열역학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정량화했다. 여러 데이터를 연결 짓고 결과를 이야기처럼 설명함으로써 다양한 국내외 연구자들의 공감을 끌어낸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는 “경험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뿐만 아니라 문제를 전달하고 설득하는 능력이 연구자에게 필수임을 체감했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재성 박사의 강연 발표자료: 자신의 연구 여정을 소개 (좌) / 이재성 박사의 강연 발표자료: 공학에서의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 (우)
이재성 박사의 강연 발표자료: 자신의 연구 여정을 소개 (좌) / 이재성 박사의 강연 발표자료: 공학에서의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 (우)

이재성 박사는 발표 말미에 지도교수의 열역학 수업에서 나왔던 시험 문제를 소개했다. ‘할머니께 열역학 법칙을 설명하세요’라는 질문이었다. 이 박사는 해당 문제에서 0점을 받은 일화를 통해 청중들에게 웃음을 주는 한편, “과학적 사실을 설명할 수 있어도 전달하지 못하면 소용없다”라며 당시 학부생이었던 자신에게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줬다고 설명했다.

질문, 실패, 성장: 공학자로서의 또 다른 이야기

강연은 연구의 전문성뿐 아니라 연구자의 내면, 성장, 실패 경험까지 모두 담아낸 특별한 시간이었다. 강연 후 약 1시간가량 진행된 질의응답 시간에서 자신의 시행착오를 숨기지 않고 가감 없이 이야기했다. 다른 이과 학생들보다 수학, 과학 기초 지식이 부족해 학부 시절 어려운 점이 없었냐는 질문에 이 박사는 “다른 이들이 10분 걸려 이해하는 것을 3, 40분을 쏟아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래서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그들의 시간까지 빌려 공부했다”라며 익숙하지 않은 학문을 공부했던 고충을 이야기했다. 본인의 문과적 성향과 다른 공학을 공부할 때, 적성에 맞지 않는 점은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개인의 학문적 성향이 굉장히 극복하기 어렵다는 생각과 동시에 매우 좁은 영역으로 한정하는 단어라고 생각한다”라며 “새로운 분야이더라도 꾸준히 공부하고 버티다 보면 개인 성향이 어느 정도 그 학문에 맞춰 변화하는 것 같다”라고 답했다. “처음에는 성향이 맞지 않다고 생각해 학문을 지속하는 데 고민도 많았지만 결국 오래 열정을 가지고 공부를 지속함으로써 점차 성향이 바뀌어나가는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공학자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는 모든 과정이 자신을 ‘이해하는 공학자’로 성장시켰다고 말했다.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나 혼자 앉아 있지 말고 실험실 밖으로 나가는 것이 훨씬 좋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라는 말은 자리에 앉아 있던 많은 이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실제로 다른 전공자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산업 현장에서 엔지니어들에게 의견을 묻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연구 주제에 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고 했다.

이재성 박사가 꿈꾸는 연구자는 단순히 정답을 계산하는 과학자가 아니라, 그 정답이 ‘왜’ 필요한지 대중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의 연구는 유리라는 물질을 매개로 사람들의 이해와 소통을 돕기 위한 과학적 이야기로 이어진다. 강연 내내 과학이라는 전문성을 갖추면서도 결과를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능력을 함께 기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공학적 사고는 정답을 찾지만 인문학적 사고는 사람과 연결된다”라는 그의 말은 연구자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 많은 학부생에게 깊은 통찰을 안겨주었다.

자신의 연구 여정을 소개하는 이재성 박사(좌) / ‘문과생이었지만 공학을 합니다’ 현장(우)
자신의 연구 여정을 소개하는 이재성 박사(좌) / ‘문과생이었지만 공학을 합니다’ 현장(우)

이 박사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자신이 수학적 역량이나 과학적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문 간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의 관점으로 연구를 설계하고, 문제를 정의하고, 의미를 찾아가며 성장했다고 말했다. “누구나 엘리트가 될 수는 없지만, 누구나 자신의 방식으로 의미 있는 질문을 할 수 있다”라는 마지막 말을 통해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심 어린 조언을 청중들에게 건넸다.

다양한 분야의 선배 연구자와 교류할 수 있는 ‘스누인의 연구일지’는 ‘경험공유’와 ‘주제탐구’로 구분하여 기획, 구성되었다. 스누인의 연구일지는 5월 21일에 ‘화학 재료과학 분야 연구와 논문 작성법(이윤경 신소재공동연구소 연구원)’과 ‘학부생 연구자를 위한 조언(유경민 재료공학부 학생)’을 주제로 8~9회차 강연이 진행될 예정이다. 강연 수강 신청은 중앙도서관 홈페이지에서 가능하다. 앞으로 이재성 박사만큼 흥미로운 선배 연구자들의 이야기들이 이어질 예정이다. 연구자를 꿈꾸는 학부생과 연구자의 길을 걷고 있는 이들에게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서울대학교 학생기자단
우현지 기자
miah01@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