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후 외 3인 〈잠시〉로 대상 수상
관정도서관 2층 출입구 앞 잔디밭, 수많은 서울대인이 지나다니는 그곳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자리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에서 주관하는 SNU ‘도서관 옆’ 공공미술 프로젝트에서 수상하여 제작된 공공설치미술 작품이다.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주어진 주제에 대해 야외 공공미술 작품을 제안하는 텍스트나 스케치, 3D 이미지 등의 서류를 학생들에게 공모받은 뒤, 수상작을 선정한다. 대상 수상작은 실물로 제작하여 전시까지 진행하는 프로젝트다. ‘잠시’라는 주제의 제4회 공공미술 프로젝트에서는 2024년 2월부터 8월까지 약 6개월간 대상 수상작의 전시가 이뤄졌다. 작품을 기획하고 제작한 김동우(건축학과·23), 서유빈(서양화과·20), 유승준(재료공학부·23), 이지후(기계항공공학부·20) 네 명의 학생을 대표하는 팀장 이지후 학생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어떻게 작품을 구상하고 제작하게 되었는가
처음에 공모전에 주어진 제시문을 읽으면서 어렸을 때 읽었던 책 한 권이 갑자기 떠올랐다. 제시문에서는 ‘학교생활을 하면서 미래가 불확실해서 불안하고 힘든 순간을 겪게 되는데, 잠시 그런 순간에 멈춰 서서 쉬어가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내용이 〈하워드의 선물〉(에릭 시오웨이·메릴 미도우, 2013)이라는 책 속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했다. ‘야생마는 생각하기 위해서 달리기를 멈추지만, 경주마는 달리기 위해서 생각하기를 멈춘다.’라는 구절이다. 많은 서울대 학생들이 앞만 보고 달려오는 삶을 살아왔을 것 같은데, 그 굴레에서 잠시 벗어나서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것인지,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볼 시간을 마련해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작품 제작을 마음먹게 됐다.
〈잠시〉는 어떤 작품인가
앞에서 말한 책 속의 구절이 씨앗이 되어 만들어진 작품으로, 말의 형상을 딴 키네틱아트로 제작했다. 경주마를 상징하는 이 작품은 움직이면서 곡선을 그리는데, 이 곡선은 말이 달리는 영상을 찍은 후, 영상 속 말의 다리가 움직이는 파동을 직접 분석하여 형체를 입힌 결과물이다. 보다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어서 기계적으로 움직이도록 제작했지만, 사실 처음 작품을 구상할 때는 기계적인 동력 없이 바람에 휘날리게 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결국에는 기계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동시에 바람에도 날릴 수 있도록, 비행기 날개의 형상을 본뜨고 경량화하여 두 가지 생각을 모두 작품에 녹여냈다.
바쁘게 살아가는 학생들은 시간과 경쟁의 흐름 속에 휩쓸려 주위를 돌아보지 못하고 경주마와 같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생각을 멈출 때가 많다. 잠시나마 경주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은 야생마가 되어 멈칫하게 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본인을 속박하고 있던 흐름을 인지하게 되고 그곳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의 길을 자신의 속도로 걸을 수 있게 된다. 도서관을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에게 이 작품은 그들의 곁눈에 어느 순간 보이기 시작한 계속 달리는 운명을 가진 듯한 파동의 형체로서, 그들에게 생각, 고민, 삶으로부터 ‘잠시’라는 자유를 준다. 그리고 멈추어 ‘잠시’ 바라보는 순간에는 야생마가 된다.
본인에게 ‘잠시’가 되었던 순간은 언제였나
대학교에 입학하고 난 후, 생각보다 공부하면서 학업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던 중 군대를 가게 되었고, 학업에서 잠시 떠나 홀로 사색할 시간이 많아졌다. 그때 ‘지금까지는 하고 싶은 일을 한다기보다는 해야 할 것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어차피 한 번이니 하고 싶은 것은 모두 해봐야겠다고 생각했고, 마찬가지로 대학교도 다시 올 수 없으니 나중에 후회가 남지 않게 해보고 싶은 공부는 모두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 그래서 1학년 때부터 관심은 있었지만 도전하지 않았던 건축학과 공부에 도전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기계공학과 건축학을 복수전공을 하기 시작해, 지금까지도 예상보다 잘 다니고 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어떤 점이 좋았고 어떤 점이 힘들었나
우선, 작품을 실물로 제작하면서 많이 힘들기도 했지만 그만큼 재미있었다. 처음에 기획할 때도 단순히 ‘이런 모양으로 만들 거야’라는 구상만 가지고서는 제작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떤 재료를 써서 어떤 구조로 어떻게 결합할 것인지까지를 생각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아주 세밀하게 각 부분을 따져가면서 완성해나가는 과정이 굉장히 좋았다. 용접, 그라인딩, 조립 등을 직접했다. 90개의 날개를 제작하는 과정도 기억에 남는다.
부담감 때문에 힘들기도 했다. 우선 제작 시기가 학기 중이었기 때문에 학부 수업과 연구생 생활을 병행하면서 작품 제작까지 하려니 체력적인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었고, 팀장으로서 느끼는 부담감도 있었다. 또,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과 동시에 대상작으로 선정되지 못한 친구들의 몫까지 해낼 수 있는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래도 결국 완성된 작품을 보고, 또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어느 때보다도 기분이 좋았다.
개최식 날 미술대학 교수님들과 건축학과 교수님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참석했는데, 그날 사람들이 놀라던 반응이 정말 기억에 남고, 그 이후로도 도서관을 오가던 사람들의 호기심 섞인 표정을 보면서 기분이 좋았던 적이 많다. 또, 도서관 직원 선생님이 ‘작품이 우아하게 움직인다’며, ‘작품이 주변과 만들어내는 경치가 참 좋다’라고 말씀하신 것도 가슴 속에 많이 남는다. 그동안 작업해본 결과물들 중에서도 눈에 띄게 가장 정교하고 복잡하게 만들어진 작품이었기 때문에 완성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지후 학생이 생각하는 ‘공공미술’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공공미술 작품에 대해 사람들은 제각각 모두 다른 경험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창작자의 것이라기보다도 사람들의 것에 가까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공미술이란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인 것 같다. 어느 미술관에 어떤 작품이 ‘있다’ 고 해서 찾아가서 보는 것과, 어떤 공간에 ‘존재하는’ 작품을 우연히 스쳐 지나가면서 보게 되는 것은 다르다. 나는 ‘존재하는 것’을 만들고 싶었고, 학교 도서관 부근은 많은 사람이 오가는 자리이니까 지나가다가 슬쩍 보고 ‘저게 뭐지’ 하면서 잠시 멈춰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이 되기를 바랐다. 하루는 작품 앞에 서 있으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는데, 한 학생이 작품을 스윽 보더니 “뭐지, 지네인가?”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굉장히 재미있었다. 설명문을 안 읽으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런 취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작품 홍보를 크게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서울대학교 학생들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 좋겠다고 전하고 싶다. 1학년 때 기부 재단에 올라왔던 한 편지를 굉장히 인상 깊게 읽고서 서울대학교에 다니는 학생으로서 책임감을 생각해보게 됐다.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하는 것도 좋지만, 사회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내가 가져야 하는 책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많은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잠시나마 경주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은 야생마가 되어 멈칫하는 순간, 우리는 공허해지기도 하고, 쓸쓸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멈추어 자신을 돌아보는 그 찰나의 순간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다. 경주마의 흐름 속에서 멈춘 야생마의 ’잠시‘를 포착함으로써 잠시 멈춰도 된다는 위로를 주는 작품을 제안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난 후 작품 소개말을 다시 들여다보니, 모든 구절이 스스로를 향한, 그리고 우리 모두를 향한 제작자의 간절한 외침으로 들린다. 현재 작품 〈잠시〉는 전시가 종료되었지만, 그 자리에 새로운 작품이 다가오는 9월부터 내년 8월까지 전시될 예정이다. 도서관 옆 잔디밭, 일상적으로 스쳐 지나가기 쉬운 그 자리엔 학생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는 작품이 모두를 향해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그곳을 지나갈 때면, 잠시 멈춰서서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서울대학교 학생기자
김수민(국어국문학과)
47sumin@snu.ac.kr